2010년 05월 13일
우리는 모두 외국인이다.
자주 이사하는 한국인은 살림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챙겨서 떠도는 유목민을 닮았다. 그래서 낯선 동네로 떠날 때마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한다. 색 바랜 일기장, 젊은 날의 편지, 청춘의 방황과 사색을 부추기던 오래된 책들, 한때 열정을 갖고 몰두했지만 이제는 짐더미가 된 것들을 버려야 한다. 한꺼번에 버리면 가슴이 너무 아플까 봐 일부는 남겨 놓지만, 결국 이사 횟수에 비례해 버리는 것이 많아진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삶의 기억과 흔적을 지워버리는 일이며, 지친 영혼이 잠시 머물 곳을 없애버리는 일이며, 처진 어깨를 떠미는 일이다. 오로지 진군이다. 전쟁 같은 삶을 위해.

손낙구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셋방 사는 가구의 80%가 최소 5년에 한번 이사하며 5년이 지나면 동네 사람 3분의 2가 바뀐다. 우리에겐 자기가 사는 곳에 익숙해질 기회가 없다. 만일 익숙해지고 있다면, 그건 떠날 때, 바뀔 때가 됐다는 신호일 뿐이다.

서울 외곽 구파발 갈 때였다. 그 익숙했던 거리가 영화 장면 전환하듯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낯선 세계가 나타났다. 오랫동안 다녀본 길이지만, 기억을 되살릴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외국 여행자처럼 그 거리를 더듬어 가야 했다. 그곳은 은평뉴타운이라고 했다. 서울살이 37년이지만 아직도 어색하다. 얼마를 더 살아야 이 도시와 친해질까.

요즘 종로 1가를 걸으면,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라고 노래한 시인 정현종처럼 견디기 힘들다. 종로 1가를 안다는 것은 지도상 위치를 안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 거리에 있었던 빈대떡 집, 선술집을 안다는 것이며, 그런 것들이 만들어 내는 종로 1가다운 분위기와 정서를 안다는 것이다. 그 종로 1가가 사라졌다. 종로 1가를 보자기에 싼 뒤 얏! 하고 벗겨내 바꿔치기 하는 마술이 아니라면 이렇게 바뀔 수가 없다.

이대근 칼럼 중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5121812335&code=990339
by 고양이 | 2010/05/13 23:55 | * | 트랙백 | 덧글(0)
2010년 05월 13일
급진주의, 낭만주의

급진주의가 '예외 없는 집단적 변혁을 위한 근본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라면, 낭만주의는 '예외적 개인들의 의지와 결단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태도'이다. 그래서 급진주의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의 정합성을 중요시하지만, 낭만주의자는 추구하는 가치의 진정성을 중요시한다. 역사적으로 낭만적 자의식이 뛰어난 예술을 낳은 경우는 많지만 사회 변혁을 만들어낸 경우는 거의 없다.

-학교마치고 아트앤스터디 가는 중에 6호선 화랑대역 가판대에서 산 시사인 139호 박권일의 텅 빈 기표가 된 '김예슬 선언'중

by 고양이 | 2010/05/13 23:29 | * | 트랙백 | 덧글(1)
2010년 04월 15일
왜 읽지


데리다는 존재로 인식되지 못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글을 썼다

왜 책을 읽는가?

인간이 존재로 인식되지 못하는 상황들에 답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지금나는 한계가 있는 시각으로도 이토록 답답한데, 외부에 대해서 알아가고 느껴갈수록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도 내가 더 외부의 인식되지 못하는 존재로 눈을 넓혔으면 좋겠다. 나는그게 인간답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 외부의 존재들에 대해서 인식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것 같).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도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할 것 인지를 알기 위해서 읽는(것 같).

열심히 읽지도 않지만, 오늘 수업 중에 책을 왜 읽냐고 교수님이 물어서생각해봤다.

데리다의 법의 힘과 경계도시2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랑 책이랑 짝짓는 거 재미있다. 최근엔 공기 인형-감정 노동을 짝짓고 혼자서 좋아했고 오늘은 교수님한테 저 둘 짝지어서 수업 들었다. 재미있다. 요렇게 짝지어서 읽고 보면 머리에는 물론 가슴에도 잘남는다. 그래서 좋다. 재미있다.

 

나에겐 신앙이 있기 때문에 나의 신앙과 연결시켜서 생각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기독교인들은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으로 지음 받았지만 사람답게살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이야기 하고 있는가. 물론 묵묵히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기독인들이있지만, 세상에 보여지는 기독인은 자기의 주장을 하는 모습일 것이다.세상과 구별되기 보다는 세상과 같지만 거기에 더해서 종교라는 선하게 비춰지도록 양의 탈까지 쓴 것 같은 모습처럼 느껴진다

by 고양이 | 2010/04/15 00:07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7월 01일
+
39계단,알프레드 히치콕
싸이코,알프레드 히치콕
시민 케인,오슨 웰스
생활의 발견,홍상수
극장전,홍상수
아마로 신부의 범죄,까를로스 까르레라
굿 셰퍼드,로버트 드 니로
준벅,필 모리슨
퍼,스티븐 세인버그
비브르 사 비,장 뤽 고다르
히스토리 보이스,니콜라스 하이트너


플로베르의 앵무새,줄리언 반스
다이앤 아버스,퍼트리샤 보스워스
제발 조용히 좀 해요,레이먼드 카버

줄리언 반스는 계속 읽어야겠다.


by 고양이 | 2007/07/01 13:53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6월 18일
니진스키의 고백, 문예출판사, 1975, 218p
""나는 울고 싶은데 신은 내게 계속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빈들거리는 걸 원치 않는다. 내 처는 줄곧 울고 있다. 나 역시 운다...."


푸른숲에서 <영혼의 절규>로 개정되서 2003(?)년에 다시 출판됐다. 번역이 아주 훌륭하다고 한다.
by 고양이 | 2007/06/18 22:43 | book*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6월 18일
+
요즘 우리동네 비디오가게 먼지털기가 나의 일과중 하나이다.
먼지 털어가며 구프로들을 빌려서 보고있는데,

노스탤지어,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라이프보트,알프레드 히치콕
맨하탄 머더 미스테리,우디 앨런
사랑한다면 이들처럼,파트리스 르콩트
비열한 거리,마틴 스콜세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키카,페드로 알모도바르

이렇게 어제 오늘 본 거 같고,
지젝의 히치콕에 대한 로쟈의 포스팅을 본 후로 히치콕이 보고싶다. 

그리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났더니, 홍상수를 한꺼번에 모아서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만 빼고-.-;;)홍상수의 영화가 '뒈지게' 기다려진다는 정성일의 말이 이해가 갔다. 우리동네에 <강원도의 힘>이 없던 거 같던데, 그게 제일 보고싶다. 딴 건 극장에서 다 봤는데, 그거랑 돼지-만 못 봤었다. 다른 비디오 가게는 귀찮아서 가기 싫은데-.-;;이 귀차니즘. 보고싶은 마음이 귀차니즘을 이기길 바란다.  

영화를 보고나면 그 여운으로 눈과 머리와 몸이 멍하다.

더운계절을 구프로 비디오와 달달한 냉커피로 버텨야겠다.
구프로는 싸고 대여기간도 길고 좋다.
by 고양이 | 2007/06/18 22:16 | film+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6월 14일
+

요즘들어 부쩍 동생과 나는 빈혈로 고생중인데, 나는 여름이 왔나보다 싶은게 몸이 더 깔아진다. 여름은 힘든 계절이다.

화요일- 까미유 끌로델, 거미의 계략, 산딸기, 구름속의 산책(저녁먹으며 티비로), 파이트 클럽(동생과 티비로)
수요일- 외침과 속삭임, 위대한 유산(점심먹으며 티비로), 쥬드,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몸이 너무 힘들어 영화를 주로 보고 있는데, 외침과 속삭임 보고 정말....대단한 잉마르 베르만이구나 싶었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 영화들지만
볼수록 삶을 잇는다는 것이 힘든 영화들이지만
인생을 바꿀 것 같은 영화들을 당분간 볼 생각이다.
어쨌든 살아야하고 여름은 지내야하니까
빈약한 목록들의 비디오 가게지만 구프로를 500원에 빌릴 수 있으니까
내일부터는 히치콕 특선으로 빌려 봐야겠다. 히치콕은 목록이 꽤 되는거 같던데...

by 고양이 | 2007/06/14 00:47 | film+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6월 11일
팩토리 걸

영화 후반의 인물에 대한 감독의 치밀함이 모자란다. 그저 가녀린 소녀로만 해석해 놓았다. 그렇지만 시대의 묘사는 볼만하다
이런 기사들을 먼저 읽고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 보면서 가장 아메바적으로 생각한 것은 앤디워홀 괴짜 자식, 빌리역의 헤이든은 왜 저래, 돈 많은 어린 여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내가 지금 돈 주고 앉아서 봐야돼? 뭐 이런거였지만, 팩토리가 저런식으로 돌아갔구나....그곳의 생생함을 볼 수 있는 건 좋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의상을 전공한 사람은 에디 세즈윅 사진 많이 봤을 거다. 시대의 아이콘. 뭐 그래가지고, 하여튼 사진으로만 보다가 동영상으로 삶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보니
'아 우울한 부자소녀여, 어쩌자고?'  
영화에서는 아빠에게 못받은 사랑을 앤디의 사랑으로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앤디에게도 버림받는다. 하지만 그곳은 '팩토리'였으니 앤디외에 다른 아이콘은 언제든 대체가 가능한 곳이었지 않았을까?
순진하건지 멍청한건지....착하다고 해두자.....우울하고 순진한 소녀에게 멍청이란 단어는 죄책감이 든다.
딸에게 아빠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상처는 보편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암암리에 수많은 딸들이 상처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영화에서처럼 대부분의 엄마는 그 사실을 외면한다고 한다.(아, 냉정한 사람들이여. 그들에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을 권한다.) 그러한 상황들로 인해 더욱 상처받아 우울증에 빠져 정신병원에 오게 되는 경우가 무척 많다고 한다. 딸들은 아빠도 남자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여성으로서 약자의 아픔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상처 받거나 독해지거나.....혹은 인간, 남자에 대해 더욱 치밀하게 생각하게 될 수 있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치밀함의 결과는 남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여성으로서는 불신하고 인간으로서는 사랑받고 싶고....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울하고 괴로운 딜레마의 시작이다.

팩토리에서 소외된 후의 에디의 삶이 더 궁금했는데, 그건 영화에서 생략해버리는 바람에 볼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이 제대로 해석됐다면 에디의 삶을 좀 더 깊게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그저 불쌍한 부자소녀로서 말고.....
영화적으로도 한 인간의 상처와 우울함을 깊게 파고들어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물까지 흘리며 감정이입 백프로되서 봤다. 집에 오는 길엔 우울한 소녀들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멍했고다. 에디처럼 예쁘지 않고 부자가 아닐 뿐. 우울한 사람들은 미워할 수가 없다. 상처라는 것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아픔을 가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안고 산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자신의 상처는 자신이 경험한 것이기에 오롯이 그자의 아픔으로 남으므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비디오가게에서 로댕의 그녀 까미유 끌로델을 빌려봐야겠다. 로댕박물관에서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조각을 같이 봤는데, 좋다 싶은 건 거의 까미유의 것이었다.    

by 고양이 | 2007/06/11 12:26 | film+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6월 10일
+
밑에 써논거 다 조금씩 건드리고
다 읽은 건 녹색평론과 더블린 사람들 중에서 자매들 뿐이었다지-.-

큰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는데,
장례미사 드리고, 화장했다.
유골함에 담겨나오는 재가되는걸 보니
참 허무했다. 그랬다. 삶이란 -하네.-같다.라고 읊조릴 만큼의 생이 아니라 무어라 할 수 없지만, 참.....그랬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빠는 농담으로 이제 그만 공무원 시험보는게 어떠냐고 자꾸 권유하신다.
친척들이 공무원들이 많아서 아빠는 자연스레 나에게도 권유한다.
나도 아빠를 모르지만 아빠도 나를 모르신다.
하지만 저번에 했던 대화로 인해 어느 정도 포기하신 거 같고,
한심하다. 나 자신이.
학비가 싼 나라에서 태어났어야한다.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는 도서관에서 막스갈로가 쓴 평전을 읽었는데, 줄치다 보니 온 페이지를 칠 것 같아 포기하고 책을 사기로 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 그녀가 쓴 편지들을 모아 놓은 책을 먼저 읽었었다. 보고 많이 웃었고, 공감도 많이 했었다.
계속 읽어야지.

그리고 비디오 가게에 베르히만 특선해서 제 7의 봉인, 마리와네뜨의 생, 어두운 유리를 통해서 이렇게 세 개가 있길래 우석훈님 블로그에서 제 7의 봉인에 관한 글을 읽은 것이 생각나기도 해서 빌려보았다.
아, 내 짦은 무식으로는(나는 무식도 짧다-.-;;) 영화에 관해 무어라 쓸 수 없다. 
셋 다 좋았는데, 요즘 나의 관심사와는 어두운 유리를 통해서가 가장 와닿아서 재밌게 보았다.
우선 연체료때문에 반납하고, 빈 시간들에 가끔 영화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아하' 순간에 다시 빌려봐야겠다.
언제^^?
  
by 고양이 | 2007/06/10 13:10 | film+ | 트랙백 | 덧글(1)
2007년 06월 07일
오늘 읽을 책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버트런드 러셀, 자작나무
로자 룩셈부르크,임지현
녹색평론5-6월호
서양철학사 100p
문법책 아주 조금
영어 소설, 도서관에 가서 골라 읽기.

이렇게 써놓면 읽다가 배위에 올려 놓고 그냥 잠들진 않겠지.

어제 엘리엇 스미스랑 슈만cd를 샀더니 자꾸 누워서 음악만 듣고 싶긴 하지만, 나는 무식하니까, 계획한대로 열심히 읽어야한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오늘처럼 비올 것 같은 날씨 너무 좋다.
by 고양이 | 2007/06/07 09:34 | fil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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